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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길위에서 강화발견 유레카 생태방

미선 씨의 나들길

이승숙 | 2014.03.20 20:55 | 조회 2346

서울서 흙길이 그립다면, '미선씨 나들길' 가보세요

[역사와 함께 걷는 강화나들길 ⑤] 명소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주말 아침인데도 버스 안에는 제법 사람이 많다. 나들이라도 가는지 평상시와 다른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꽤 보인다. 서울 신촌을 출발해서 강화로 가는 3000번 버스는 서울 합정역과 염창동을 지나 김포공항 건너편의 송정역에서 또 사람들을 태웠다. 길 가에 서 있던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서너 명도 차에 올랐다.

버스는 김포시에서 한 무리의 사람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했다. 통진읍에서 또 서너 명이 내렸다. 이제 버스 안에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출발은 강화터미널에서

버스 안은 조용하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잠이 모자랐는지 다들 눈을 감고 잠잠히 앉아 있다. 버스는 마치 제 혼자 굴러가는 것처럼 강화도를 향해 나아가다가 강화해협(江華海峽)을 건넌다. 육지와 육지 사이에 끼여 있는 좁은 바다이니 거리래 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 강화대교가 놓이면서 강화도는 김포에서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게 되었지만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이 좁은 바다가 천 리 만 리나 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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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똥풀이 반겨주는 5월의 나들길입니다.
ⓒ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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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끝부분에 다다르자 차들이 속도를 늦춘다. 조류인플루엔자(AI) 유입을 막기 위해 차가 지나갈 때마다 길바닥에 설치해놓은 긴 관에서 약물이 분사되어 나온다. 힘차게 달려오던 차들은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그 곳을 지나간다. 비눗물 같이 희뿌연 약물이 차 유리에 점점이 뿌려진다. 버스를 운전하던 기사는 황급히 와이퍼를 작동시켜 유리창을 닦았다. 그러자 길 오른쪽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횃불 모형이 보였다. 역사의 고장 강화에 온 것을 반겨주는 횃불이다.


다리를 건너니 곧 익숙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화읍의 남산 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성벽이 이어지고 산마루엔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이 서있는 남장대(南將臺)도 보인다. 버스 안 사람들의 눈길이 산으로 간다. 알 수 없는 안온함이 순간 버스 안에 전해지는 듯했다.

인삼센터를 왼편에 두고 버스는 크게 몸을 틀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날 차비를 한다. 임성환(58)씨와 정미선(56)씨 내외도 배낭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좀 쌀쌀한 듯해서 약간 두꺼운 옷을 입고 왔더니 몸이 둔하다. '걷다 보면 추위쯤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옷을 좀 가볍게 입고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미선씨의 머리를 스쳤다.

3000번 버스의 종착지는 강화터미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종점까지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내리면 된다. 혹시 내릴 곳을 놓칠까 봐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강화대교를 건너 들어오는 버스들의 종점은 강화터미널이기 때문이다. 강화대교를 건너면 승객도 버스 기사도 다 느긋해진다. 종점을 앞두고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성환씨와 미선 씨는 마음이 급하다. 오늘 걸을 나들길이 벌써 부르는 듯해서 차가 채 서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실포실한 흙길, 나들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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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터미널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는 강화를 처음 찾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줍니다.
ⓒ 박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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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터미널 안 관광안내소 앞에는 벌써 사람이 여럿 모여 있다. 아는 얼굴들이 보이자 두 부부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어린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더러 있다. '강화나들길'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강화를 찾고 있다는 반증일 터이다. 아는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새롭게 얼굴을 트면서 나들길 1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강화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나들길 코스는 다섯 개나 된다. 1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을 비롯해서 5코스인 '고비고개 넘는 길'과 100년 전 강화를 글로 남긴 <심도기행>의 고재형 선비 생가로 가는 길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도 강화읍의 터미널에서 시작이 된다. 또 철종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길인 14코스 '임금님의 첫사랑길'의 출발점은 강화터미널 근처에 있는 용흥궁 공원이고, 그 외 '고려궁 성곽길'도 터미널의 관광안내소 앞이 모이는 장소이다.

이렇게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많은 건, 서울이나 인천 등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도 볼 수 있다. 터미널은 강화행 버스들의 종착지이니 강화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더라도 길을 몰라 초행길에 당황할 일이 없다. 나들길을 처음 개발할 때 이런 점도 다 생각했다니, 길을 계획하고 디자인한 사람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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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읍을 둘러싸고 있는 강화산성은 고려시대에 만들었으나 몽골의 요구로 없앴다고 합니다. 현재 산성은 조선 숙종 때 다시 쌓은 것입니다.
ⓒ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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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씨 부부는 걷기 마니아다. 전국의 어지간한 길은 다 가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제주도 올레길도 여러 번 걸었고 지리산 둘레길, 강릉 바우길 등등 이름난 길들은 다 걸어봤다. 그런 그이들이 재작년부터 주말만 되면 강화도로 달려온다. 강화나들길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이 성환씨 부부가 사는 동네다. 신촌을 출발해서 강화로 가는 3000번 버스는 염창동을 지나간다. 그러니 이 부부에겐 강화도로 놀러 가는 건 일도 아니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갈 때는 먼 곳이라 휴가를 이용해 가지만 강화나들길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치 이웃집에 놀러 가기라도 하는 양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아침에 집을 나와 종일 자연과 함께 놀다가 오후 느즈막히 차를 타고 돌아가면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다. 서울에서 가깝다는 것이 강화나들길의 가장 큰 장점이다.

걷기 마니아, 나들길에 빠지다

더구나 강화나들길로 검색을 하면 나오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도보팀을 구성해 나들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가이드 역할도 해준다. 또 주중의 화요일과 수요일에도 걷는 모임이 있어서 형편에 맞춰,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다. 미선씨 역시 그렇게 나들길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길 안내를 해줄 수 있을 만큼 나들길의 중견 길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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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들은 모두 일가친척입니다. 강화나들길을 걷는 우리들도 다 일가요 친척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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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길은 흙길이 많아서 참 좋아요.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볼 수 있는 길이 바로 나들길이에요."


길을 걷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연신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성환씨와 미선씨는 마치 자신들에게 해주는 칭찬이라도 되는 듯 기분이 좋다고 한다. 처음 나들길을 걸었을 때 자신들이 느꼈던 그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느끼니 신기하기도 하다.

포실포실한 흙길을 걸으면 마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때로 돌아간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땅 따먹기도 하고 공깃돌놀이도 하다보면 손등에는 뽀얗게 흙먼지가 앉아 있곤 했다. 나들길은 어린 시절로 데려가준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놓고 살던 사람들도 나들길에서는 어느 결에 술술 풀어진다. 열두어 살짜리 소년과 소녀가 되어 부드럽고 순해진다.

나들길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십년지기처럼 만들어준다. 흙길이 품어주어서 그렇게 다들 부드러워지나 보다. 길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같이 걷는 사람들이 좋아서 자꾸 찾게 되는 게 바로 나들길이다. 성환씨 부부도 그렇게 나들길에 빠졌다. 

미선씨의 배낭에 매달려 있는 모형들이 걸을 때마다 달랑 댄다. 말 모양을 한 것도 있고 걸을 때마다 딸랑 대는 종도 있다. 또 앙증맞도록 작은 물 컵도 하나 달려 있다. 그이가 걸어온 여정을 말해주는 물건들이다.

인생길 후반, 나들길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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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서 가는 사람도 뒤따라 가는 사람도 한 마음입니다. 길은 '평화'를 줍니다.
ⓒ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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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강화나들길 배너다. 강화나들길은 손수건보다 조금 작을 듯한 천에 각 코스를 상징하는 그림과 글씨를 새겨 넣은 배너를 만들어서 나들길을 처음 걷는 길벗들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미선씨도 처음 나선 나들길에서 선물로 받은 배너를 소중히 여겨 아예 배낭에 단단하게 옷핀으로 고정을 시켜 놓았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라고 쓰여 있는 글귀에 자꾸 눈길이 간다.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 또 기타의 모든 길들은 강화나들길과 일가친척이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 역시 모두 일가요 친척이 된다.

열심히 달려왔던 인생 50년, 이제 어느 정도 이루었다. 아이들도 다 제 앞가림을 할 만큼 자랐고 모든 게 순탄하게 잘 굴러간다. 이제 남은 건 두 부부의 건강이다. 그래서 찾은 나들길이었다.

미선씨는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남편을 슬쩍 돌아봤다. 늘 앞장서서 세파를 헤쳐 나갔던 남편이었다. 그래서 가정은 반석 위에 선 듯 평안했다. 남편이 메고 있는 배낭에는 물 한 병과 약간의 간식만 들어 있을 뿐 무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의 길을 헤쳐 오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 했을 남편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걷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선씨의 콧날이 시큰해져 온다.

나들길이 있어서 참 좋다고 미선씨는 생각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처럼 열심히 살아왔으니 누릴 자격은 충분히 된다. 이제 두 부부는 나들이 하듯 '살방살방' 인생길을 걷는다. 그 길에 나들길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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