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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작은 병어와 속 좁은 밴댕이

함민복 | 2016.06.04 05:43 | 조회 1133

입 작은 병어와 속 작은 밴댕이

 

   강화도에 밴댕이와 병어가 제철이다.  6월이 되면 회 중에 병어와 밴댕이를 좋아 하는 나는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설렌다.

   강화도 본섬에서 볼음도까지는 뱃길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오늘은 볼음도에서 잡아 나온 밴댕이 병어 잔치가, 열린 사랑방 ‘이웃사촌’에서 있는 날이다. 서둘러 강화읍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볼음도에 병어 밴댕이가 잘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저녁 잔치를 위해 음식 준비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주방에 들어가 닦달(손질)하고 있는 병어를 살펴본다. 등과 배에 은백색의 작은 비늘들이 잘 붙어 있어 눈으로만 봐도 그 신선함이 전해진다. 병어는 볼수록 마름모꼴의 납작한 몸체가 신기하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이런 병어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큰 놈은 두 자 정도이다. 머리가 작고 목덜미가 움츠러들고 꼬리가 짧으며 등이 튀어나오고 배도 튀어나와 그 모양이 사방으로 뾰족하여 길이와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입이 매우 작고 창백하며 단맛이 난다. 뼈가 연하여 회나 구이 및 국에도 좋다. 흑산도에서도 난다.’

   늦은 점심인지, 미리 맛보기로 만들어 본 요리인지,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는다. 햇감자를 넣고 조린 병어가 달다. 감자에 밴 병어 맛이, 병어에 밴 감자 맛이 일품이다. 각자의 맛만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 맛을 나눠 보탤 때, 맛은 배가 되고 깊어지나 보다.

   

  병어를 잡아온 어부 박정훈 씨로부터 병어와 덕자와 덕대의 차이를 듣는다. 덕자는 30센티미터 이상 되는 병어를 부르는 말이고 덕대는 어종이 다르다고 한다. 덕자는 몸집이 커 뼈가 억세고 맛이 덜해 회로 먹는 것보다 조림용이 제격이란다. 덕대는 어획량이 적고 귀해 값이 비싸다고 알려 준다. 섬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한다며 박정훈 씨는 자리를 일찍 떴다. 남은 사람들은 입 작은 병어를 먹으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주 웃는다. 저녁 모임에 참가할 인원을 헤아려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사냥감을 포획해온 원시 부족들의 달뜬 표정이 읽힌다. 저녁 일곱 시에 이곳에서, 음식에 잠재되어 있던 원시성이 되살아나리라.

   나는 그때까지 병어회를 기다릴 수 없어, 전에 내가 살던 바닷가 마을 동막리로 전화를 건다. 오늘 낮물에 병어와 밴댕이를 잡아왔다는 고선장 말을 듣고, 감자와 병어가 이웃사촌처럼 어우러져 맛을 내고 있는 병어 찜을 뒤로하고 차에 오른다.

 

  ‘이거 한번 먹어보시겨. 맛이 제대로 이다!’

회를 먹고 있던 동네 청년들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숭어 내장을 굵은 소금에 찍어 입에 털어 넣었다.

  ‘비릿한 게 맛이 괜찮은데,,.’

   바다가 없는, 충북이 고향인 나를 숭어 내장의 비린내로 골려주려던 동네 청년들의 실망스러워하던 눈빛.

   19년 전 강화로 이사를 오고 겪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객지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와 바다 일을 막 시작한 고선장을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나는 고선장 배를 타고 10여 년 간 바다 일을 따라다녔다. 봄이면 바다에 나가 말뚝을 박고 일 킬로미터나 족히 되는 숭어그물을 맸다. 삼십 여분 배를 타고 나가 물이 나길 기다려, 그물에 걸린 숭어를 잡아 와 트럭에 싣고 숭어를 팔러 다녔다. 그물을 매고 두 달이 지나면 그물에 물때가 끼고 숭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 때쯤 말랑말랑한 계란 같은 물알(민챙이 알)이 그물에 걸리고 바다의 거울 조각 병어가 들기 시작한다.

   

   여느 때 같으면  조금(반달이 뜨는 음력 8, 23일)에는 물이 적게 나가, 그물이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아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았다. 내가 의아해하며 따라나서자 고선장이 우럭 낚시를 가자고 했다. 그물 터에 들러 배 위에서, 그물에 갇혀 있는 물고기가 모이게 만들어 놓은 굴뚝(연통)만 끌어올려 병어 몇 마리를 털어 실었다. 우럭 조황은 좋지 않았으나, 고선장이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얼음에 살짝 재어 두었다가 꺼내 썰어 주던 병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선장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으나, 숭어 그물을 매준 답례로 나선 뱃놀이임을 나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병어 철이 지나고 한 달 쯤 지나면 손톱만한 병어들이 빤짝이며 그물에 가득 걸렸다. 예쁘고 가엾은 새끼 병어들과 은행잎(은행잎만한 크기의 병어 별칭)들을 퍼 담아, 벌을 한참 걸어 나가서 물이 있는 곳에 살려주던 기억도 아련하게 빛난다.

   

  고선장은 밴댕이와 병어회를 뜨고 부인은 곁들이를 준비한다. 집 앞 나무 식탁에 회들이 차려진다. 밑반찬이 도시의 횟집처럼 풍성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촐한 식탁에는 정성도 함께 올라 와 부족함이 없다. 강화에서 자란 것에서만 배추밑동 맛 같은 매콤한 맛이 난다는 순무로 담근 보라색 석박지도 있다. 겨울철이 아니라 밴댕이(병어)석박지가 아닌 것이 섭섭하긴 하다. 강화도에서는 밴댕이와 병어를 제철에 잡아 소금에 절여둔다. 그랬다가 김장철에 하루 정도 물에 우려 낸 밴댕이나 병어를 나박나박 썬 순무에 버무려 밴댕이순무석박지를 담근다. 석박지가 익은 한겨울 밴댕이나 병어만을 골라 한 접시 꺼내 놓고 술안주로 삼을 때면 다른 일체의 음식이 고개를 떨군다. 밴댕이순무석박지는 가장 강화도다운 음식이라, 나는 귀한 손님이 올 때는 널리 수소문해서라도 구하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식탁엔 건강에 좋다는 함초(퉁퉁마디)나물도 올라있다. 함초 나물은 간을 안 해도 자체로 짭조름하다. 약초연구가 최진규 씨의 말해 의하면 함초는 땅의 기운과 바다의 기운 경계인 뻘에서 나기 때문에 그 약효가 탁월하다고 한다. 녹용이 좋은 약초인 것도 몸은 여성적이고 뿔은 남성적인 사슴이 음과 양의 경계에 서 있는 동물이라 그렇다고 한다. 경계를 허물고 땅과 물이 이웃으로 어우러져 사는 뻘의 힘이 함초에는 담겨 있나보다.

   깻잎에 함초를 올려놓고 된장 찍은 마늘과 병어회를 올려놓는다. 입작은 병어는 단백하며 달고, 속 작은 병어는 부드러우며 고소하다.

 

  나는 십여 년 간 같은 배를 타고 다녔으면서도, 서로 간에 사소한 오해로 거지반 일 년을 소원하게 지냈던 고선장과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예전에 썼던 짧은 시 한 편을 떠올려 본다.



밴댕이



팥알만한 속으로도

바다를 이해하고 사셨으니


자, 인사드려야지


이 분이

우리 선생님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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