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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무구한 볼음도 길

함민복 | 2016.05.06 09:26 | 조회 2308







순진무구한 볼음도 길


  볼음도에 강화나들길 열세 번째 코스가 있다.

  볼음도에 가기 위해 내가면 외포리로 간다.

  “전에는 외가면外可面과 내가면內可面이 따로 있었는데 외가면을 내가면에 포함시켜 지금은 내가면 외포리가 되었지.”

  “밖을 안에다 포함시키다니... 상당히 시(詩)적인데요.”

   시 쓰는 후배와 나눴던 말이 떠오른다.

   외포리에는 석모도 가는 배를 타는 외포리 선착장과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배를 탈 수 있는 연안여객 터미널이 따로 있다. 서도면 볼음도리행 배를 탈수 있는 선착장은 외포리 젓갈시장 쪽에 위치한다. 편도 6700원을 내고 삼보12호에 오른다. 삼보12호는 정원400명에 적재차량이 42대나 되는 393t급 커다란 배다.


  밧줄로 움켜쥐고 있던 육지의 길을 풀어놓고 배가 출발한다. 부드러운 액체의 길이 출렁인다. 멀어지는 육지 풍경의 탄력으로 배는 전진한다. 뭍을 떠남이 아쉬운 듯 배는 지나온 길에 물보라와 포말로 길을 만들어 뭍과 연결된 길을 내어보려 하나, 이내 흰 거품 길은 길 이전의 물로 흩어지고 만다. 섬으로 간다는 것은 길의 섬인 섬 길에 간다는 뜻도 되리라. 보문사가 있는 삼산면의 낙가산, 해명산을 지나자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과 장봉도와 서만도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가왔다가 점점 멀어진다.


  


 <강화지명지>에 따르면, 볼음도는 고려사(1442)와 세종실록(1454)에는 파음도(巴音島)로, <강도지>(1696)에는 보음도(甫音島)로, <여지도서>(1759)에서는 볼음도(乶音島)로 기록 되어 있다. 볼음도란 이름의 유래는,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 원병으로 출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보름 동안 머물렀고 그때 보름달을 보았다고 해서 볼음도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은염도, 대성도, 소송도, 주문도, 아차도. 뱃길은 섬 사이로 이어진다. 살아온 걸음 전체를 배에 달아본다. 지나온, 설렘과 떨림과 망설임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다 길 위의 섬이었구나. 그 무수한 섬들이 모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구나. 한 발자국만 없었어도 여기에 도달할 수 없는 먼먼 길이었구나.


  한 시간 반을 달려 배가 볼음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섬은 헐겁고 느슨한 풍경으로 배를 맞아준다.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섬의 첫인상이 여성적으로 다가온다. 작은 건물로 된 대합실 우측에 설치된 강화나들길 13코스 안내판을 보고 3시간 30분(13.6km) 걸린다는 볼음도길을 걷기 시작한다. 물 빠진 포구에 섬 이름을 딴 소형 어선 한 척이 정박되어 있다. 여름 휴가철에나 문을 연다는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어판장을 지나 해안가 길로 접어든다. 길에 풀들이 좌탈입멸(坐脫入滅) 아니, 입탈입멸(立脫入滅)한 채 풍장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길꾼들이 많이 지나가지는 않았나 보다.

  사람은 206개의 뼈와 500여 개의 근육과 100여 개의 관절로, 순간순간 깨지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는 힘으로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했던가. 사람 몸속에 있는 길인 혈관의 총길이가 9만 6000km이고 이 길이는 지구 둘레를 두 바퀴 반이나 도는 거리라고 한다. 몸속 길을 피가 돌아 내가 길을 갈 수 있으니, 결국 길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아하, 그렇다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또한 길뿐이란 말인가.


한 숟가락 흙 속에-정현종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일억 오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 마리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


  정현종의 시를 떠올리며 푹신푹신한 숲길을 통과 하자, 조개가 많이 잡혀 조갯골해수욕장이라는 이름처럼 소박하고 아담한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뻘이 많이 깎여나가는 겨울철을 막 지나서인지, 제방을 쌓아 파도에 고운 모래들이 쓸려나가서인지, 해수욕장의 모래는 거칠고 모래밭의 폭이 좁다. 이에 비해 해송 밭은 넓고 길게 잘 발달되어 있다. 광활한 뻘밭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은 경사가 완만해 여름 휴가철에는 섬 주민의 열 배가 넘는 3천여 명의 피서객이 몰린다고 한다.

   기러기들이 낮게 날아 쌔액 쌔액 깃 치는 소리가 들리고 숲에서 나는 여러 종류의 새소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귀는 새소리가 지나가는 터미널이 된다. 예민하게 살아난 청각에, 걷지 않고 늘 뛰기만 하는 심장 소리가 뜨겁게 낙관을 찍는다. 어민들의 경운기를 타고 뻘길 십오 리를 나가, 갯벌체험을 하며 뻘그물에 걸린 숭어, 병어, 농어, 망둥이와 상합과 동죽과 소라를 잡아 볼 수 있는 영뜰해변을 지난다. 길은 해안가에서 섬 안쪽으로 방향을 튼다. 순하고 착하고 예쁜 길들이 군데군데 피어난다. 농로를 걷는다. 친근하고 익숙한 민낯의 풍경이 펼쳐진다. 농로의 끝에서 들밥을 머리에 이고 걸어오는 어머니라도 만날 듯하다. 시간을 넘어 옛 기억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볼음도는 시간의 섬이기도 하다.


  소설가 최인훈은 <길에 관한 명상>에서 “인류는 천체의 움직임에서 최초로‘길’이라는 사물을, 혹은 ‘길’이라는 개념을 형성하게 되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고 했다. 가장 큰 길인 행성의 움직임 ‘궤도’에서 길의 시작을 읽어낸 작가는 다음 차례로 지구 위에서의 길인 물길에 주목한다. 물길이 먼저 생기고 그 물길을 따라 생명의 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길의 역사를 읽어 낸다. 그렇다면 생명의 길들을 만들며 흘러온 길들이 거대한 한몸으로 탄생하는 곳이 바다 아닌가. 한때 지상의 길들을 창조했던 물, 그 기억을 지우고 있는 물 위에 떠 있는 섬길. 그 섬길 보름도 나들길 위에서 길의 의미를 짚어보다 다시 길을 따른다.

  초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밭가에 쳐놓은 어망들이 없다면 이곳이 섬임을 잊을 만큼 섬은 농지가 넓다. 논만 해도 55만평이고 이 중 40만 평은 친환경 농법으로 경작된다. 이 논들 대부분은, 강화도 총면적의 삼분지 일이 간척지인 것처럼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논들이다. 수평의 물길을 막아 수직으로 자라는 식물들의 길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볼음도 길에서 비경과 절경을 자주 만날 수는 없다. 그러나 볼음도 길을 걷다가 보면 비경과 절경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심심한 그리움 돋아나는 볼음도 길은 풍경과 사람을 나누어 사람이 풍경을 보며 일방적으로 감탄하게 만들지 않는다. 볼음도 길은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을 완성해 나아가는 열린 길이다. 길을 걸으며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마음에서마저 해방시켜주는 순진무구한 길이다.


 




  드디어 볼음도의 느낌표로 찍혀 있는 서도은행나무! 하나의 작은 은행 알 속에 저리 거대한 나무가, 800여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들어있었다는 말인가. 이 은행나무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이 나무에서 풍기는 장엄함과 신령스러움을 자칫 해할 것 같아 생략한다. 다만, 눈에 보이지도 않던 정자에서 3만 4천 배나 커진 몸이, 1만 배로 커진 은행나무의 세월 앞에 고개 숙여 절을 올렸음만을 사족으로 적는다.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저수지 둑길에 든다. 둑은 민물과 바닷물 사이에 있어, 들고나는 물과 멈춰 있는 물의, 출렁이는 물과 잔잔한 물의, 맹물과 짠물의,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의 터전을 경계 짓고 있다. 둑에서 북쪽을 바라다보면, 볼음도리보다 더 위쪽에 있는 섬 말도와 북한 연백군과의 거리(5.5km)는 어이없을 만큼 가깝다.

   백묵만 한 굵기와 길이로 끊긴 기러기 똥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둑을 걷다가 고개를 든다. 멀리 둑길에 봄의 설계도면인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계절의 경계를 지우면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닥가닥 현실의 길들을 지워본다. 길을 걸으며 떠올렸던 숫자들을 뉘우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은 이후부터 길은 답사의 의미를 중시하며 다가왔다. 길을 걸으며 길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 길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길의 중심에 세우려는 경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론 길은 역사이고 역사는 길이다. 하지만, 길을 그냥 무심히 걸을 수는 없을까. 길을 걸으며 복잡한 마음을 비울 수는 없을까. 매번 길을 걸으며 꼭 여타의 무엇을 공부해야만 할까. 나들길은 현실의 길에서 이탈해 현실의 길을 성찰해볼 수 있는 길 아닌가. 잠시 아무 생각 없이 현실의 길을 지워보는 지우개로써 나들길을 만나 볼 수는 없을까. 현실의 길 위에 떠 있는 길의 섬로 나들길을 상봉해도 되지 않을까. 

     

  다시 들판을 지나고 산자락을 지난다. 흰색으로 단장한 집들을 매달고 있는 깨끗하게 정리된 마을길도 지난다. 첫발을 내디뎠던 선착장이 눈에 들어온다. 왠지 무엇인가 허전하면서도, 무엇인가가 보름달처럼 서서히 차오른다. 차후, 섬을 소개한다는 어쭙잖은 마음을 버리고 이 길을 꼭 다시 한 번 걸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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